드라이브_ 사찰 기행, 사찰 드라이브

경기도 근교 사찰, 오산 세마산 세마대지, 독산성 드라이브, 보적사 드라이브, 경기도 드라이브 코스

우성 2021. 5. 1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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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주말 오후,

오산 시내를 굽어보는 풍광이 압권이라는

경기도 오산, 세마산 독산성 내 보적사(寶積寺)로 향했다.

 

도로에서 보적사까지 1.4km

보적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다는 정보를 숙지 후

차를 끌고 올라가보기로 한다.

평지인 도로에서부터 등반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초겨울 산길 풍경을 눈에 담으며

1km 가량 구불구불 돌길을 올라왔을까

독산성, 세마대지, 보적사 방면으로 향하는 길과

양산봉으로 향하는 갈래길에 마주한다.

산문에서 1km 올라온 지점에 넓은 공터가 있다.

등산객인지, 보적사 방문객인지,

주차해 놓은 차들이 몇몇 보였다.

400m가 남았다는 표지가 있었으나,

산책 겸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하늘 아래 땅 위에 나홀로 높다하신 부처님 자비광명 온누리에 가득하소서.

"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전해지는 탄생게로 유명하다.

전등록(傳燈錄)에서 기록한 바를 잠시 살펴본다.

釋迦牟尼佛初生 (석가모니불초생)

석가모니불이 태어나자마자

一手指天 一手指地 (일수지천 일수지지)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고

周行七步 目顧四方曰 (주행칠보 목고사방왈)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天上天下唯我獨尊 (천상천하유아독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이땅에 평화를 이민족에 영광을 우리에게 천백억화신 몸 나투어 제도하소서.

비탈길을 한걸음 한걸음 올라간다.

안내문 뒤로 언뜻 보이는 독산성

세마대지, 보적사 바로 밑의 주차장 도착

 

주차할 공간이 넉넉하진 않다.

걸어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산성의 동서남북문

 

동문을 통과하여

보적사와 세마대로!

보적사(寶積寺)

401(백제 아신왕) 나라에서 창건했으며,

독산성을 만들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명은 한 전설에 의해 비롯된 것인데,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던 노부부가

마지막 남은 쌀 한 되를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여

(보물 보), (쌓을 적), (절 사)

즉 보적사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1986년 주지를 역임한 도광스님이 산성 내 세마대(洗馬代) 이름을 따서

세마사(洗馬寺)로 개칭했다고는 하나, 현재 공식명칭은 보적사이다.

세마대에 오르기 전부터 오산시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올 법하다.

해탈의 문

해탈의 문을 지나 마주한 대웅전(大雄殿)과 보적사 삼층석탑

해맑은 표정의 천진동자불

배불뚝이 천진포대화상

 

배에만 때가 탔다.

배를 만지며 무슨 소원을 그리 빌었을까?

대웅전(大雄殿)

약사여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약사불,석가모니불,아미타불 그 사이 사이로 보현보살, 관세음보살

예불때 쓰는 아담한 사이즈의 범종과 목탁

 

대웅전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산 시내 풍경

대웅전 우측 위로 자그마한 삼성각(三聖閣)

삼성각 내에는 지장보살을 모신다.

화장실 잠시 들러 손을 씻고, 세마대를 향해 출발

 

세마대가 코 앞이니 얼른 가보자.

세마대(洗馬臺)

세마대(洗馬臺)

'말을 씻는 대'

 

 

때는 1592, 임진왜란(선조 25)

권율장군이 이 산성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고 있을 때였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세자 일본 장수는 산성에 물이 바닥나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당시 산성에는 일본 장수 예측대로 물이 말라가고 있었는데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흰쌀을 부어 말을 씻기는 시늉을 했고,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은

산성에 물이 무척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그 뒤 말을 세워놓고 씻은 곳을 세마대(洗馬臺)라 불렀다고 한다.

 

세마대의 유래를 알고나니,

임란 당시 급박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적장의 장수에게 물이 바닥난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척을 하도록 하는

빼어난 기지를 발휘한 권율 장군

지금은 이렇게나 조용하고, 차분하게도

현재의 오산 시내를 굽어보는 늠름한 세마대와 보적사

그때는 어떤 모습으로 선조들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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